나의 프로젝트는 “파견” 이라고 한다. “파견”은 1990년대 후반 중국의 국영기업 개혁 중 전국적으로 거행된 노동자 해고에 대한 이야기 모음집을 담고있다.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이 “유니트”라고 칭하며 사회적 소속감을 느끼던 공장에서 갑자기 분리되어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채 낮선 사회로 방출되었다. 이 모음집은 정부에서 낸 신문 기사와 개인 연구원이 모은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번역함으로써 통해 더 완전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첫번째 어려움은 바로 1차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1990년대 후반이라는 시기가 그리 가까운 과거는 아닌지라 그 시대의 자료들은 아직 디지털화되어있지 않았고, 그에 반해 “역사” 로 취급되기에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여서 아직 그 시기의 1차 자료들을 모으며 공부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번역하는 것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그 시대와 지금은 겨우 20년 차이 밖에 안 남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중국어와 그 시대의 중국어의 차이는 놀라웠다. 1990년대 초 중국어의 특징은 사자성어와 그 전 세대로부터 전해내려온 전쟁 관련 은어의 빈번한 사용, 그리고 국가 슬로건의 일상적 인용 등이 있다.
한편, 현대 중국어는 라틴어로의 번역을 저항한다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표준 중국어는 대부분의 라틴어보다 문법 구조가 자유로운 언어다. 예를들어 쉼표를 사용하여 여러개의 완전한 문장을 연결 장치나 즉각적인 논리 연결 없이도 분리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옮겨놓은 글에서 그들은 이 자유로운 문법 구조를 이용해 자신들이 겪어온 오랜 투쟁이나 여러 뒤얽힌 감정을 환기시킨다. 그 쉼표들은 해고된 후 가장이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할 수 밖에 없었던 무모한 시도들, 1990년대 중국에 연달아 일어난 사회적 격변, 그리고 자신들을 해고한 오래된 공장들에 대한 복잡하고도 양면적인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쉼표로 연결되어있던 문장들은 한 문장으로 합쳐져있을 때야 그 본연의 의미가 빛을 봤지만, 영어 문법상의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러 개의 문장으로 나누고, 연결사와 평행 구조 등을 통해 연결감을 유지하는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모든 언어의 단어들은 그들의 적용적 의미(오늘날의 단어가 지니는 의미)와 역사적 의미(그 단어가 유래한 곳)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어는 일상적 사용 속에서도 그 역사적 의미를 쉽게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중국어가 기초를 둔 한자 체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모든 단어가 의미와 형태가 분명한 한자 하나하나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중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 단어를 이루고있는 한자보다는 영어에서 비슷하게 활용되는 단어를 찾는데 초점을 맞추곤 한다. 예를 들어 중국어로 “나라”라는 단어는 “나라” 를 의미하는 “나라 국(国)”자와 “가족”(家) 을 의미하는 “집 가(家) ”자로 구성되어 있으나, 더욱 명확하고 간결한 번역을 위해 그 구조적 의미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에 비해 뛰어난 인재에게 주어지는 높은 영광(붉은 공산주의 깃발을 들 수 있는 영광)을 일컫는 “붉은 깃발의 보유자” 라는 용어는 한자로 적힌대로 단어를 번역하고 각주로 부연 설명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문의 의미를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다.
또 다른 어려움은 바로 나의 편집자, 그리고 번역자로서의 목소리에 유의하며 작업하데서 발생했다. 중국 역사에 대한 국제적 이해를 증진시키자는 목적을 가졌던 나조차도 노동자들에 대해 오해를 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이 분노에 가득차있으며 그 분노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본문에 몰두하면서 그들의 억울함뿐만 아니라 감사함, 기쁨, 소속감, 그리고 전에 일했었던 장소에 대한 여전한 애착까지 다 이해하게 되었다. 인터뷰에서 그들은 공장을 자신들의 집이자 학교이자 요람이라고 불렀다. “공장은 곧 요람과 같다.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들은 계속 나이 들어가도 요람은 커지지도 못해 여전하다. 나는 아마 내가 요람에서 실수로 빠져나와버린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너무 오랫동안 머무른 우리 반 친구들은 나오게 될때 자신의 발과 다리로 바깥의 땅을 딛고 서있는게 익숙하지 못하다. 요람을 어찌 미워하겠는가.” (갱 자오와의 인터뷰). 번역자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깨달았던 점은 3인칭 서술이 1인칭 서술문을 지배한다는 것이었다. (“내 안에 무슨 이야기가 있겠는가?”) 그들에게 개인적 정체성보다 국민적 정체성이 먼저였고, 그에 걸맞게 행동과 태도 또한 국민적 정서 혹은 감정에 의해 결정되었다. 어쩌면 이러한 이해가 그 역사적인 시기에 대한 지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마주친 어려움들은 나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인터넷의 거대한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면서 너무나도 상반되는 목소리와 관점들을 접했는데, 그로 인해 하나만의 문서 보다는 여러가지 기사를 모아놓은 컬렉션을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씨름하고, 내가 이해한 내용을 부모님과 조부모님들이 알고있는 내용과 비교하고, “그들의 언어”로 말하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20세기 후반의 중국의 현실에 몰입할 수 있었고 그들의 삶과 존재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번역자로서 중립적인 목소리로 글 속 인물들을 공정하게 대변해야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게되며, 나의 개인적인 편견을 내려놓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번역을 하는 이유를 계속 되물었다.
우선 나는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을 보장함에서 파생되는 가치를 믿는다. 학문적 차원에서 언어는 때때로 학자들 (역사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정치학자 등) 사이에 치명적인 분열을 일으킨다. 여러 세대의 학자들이 이 언어적 장벽을 극복해 서로 간에 더 평등하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토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며, 인류의 지식을 향상시키는데 이바지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우리 모두에겐 어느 정도의 인도주의적 관심이 있다. 곁에는 없더라도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를 접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까워진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들은 울음소리, 고통, 인내심, 침착함, 그리고 희망의 작은 조각들이 국제적 관심을 받을만한 더 폭넓은 질문들을 조명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사회 개혁의 일부가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중국의 경제 개혁은 오로지 경제에만 관한 것일까? 개인들은 단순히 국가 정책의 취약한 수혜자들 일까, 아니면 역시 나라를 만드는 사람들일까? 한 나라의 역사가 국제적 사건에 비해 다른 나라들에게 관심받지 않을거라는 가정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로 인해 인류의 역사 또한 언제나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번역은 곧 창작의 한 종류이다. 다양한 온라인 정보 가운데 신뢰할 수 있는 기사를 찾고, 그 기사들을 정리한 후 엄선된 이미지와 함께 특정한 순서로 선보이는 행위 하나하나 모두 정성이 깃들어있다. 그러나 번역 분야에서도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이유로 인해 온전히 정성에서 비롯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수집한 것과 같이 “덜 중요”하다고 취급되는 글들은 쉽게 간과될 수 있으니 말이다. 번역을 제공하는 것은 단순히 글 속에 담겨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그랬듯이 번역은 본문을 읽는 방법, 그리고 복잡하고 신비한 중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Translator’s Note by Jacqueline Kim, ’23
This is my first time working with economic and political Korean vocabulary, not to mention my first time attempting to translate a nonfiction work into a language I use exclusively for conversation. My primary challenge in this translation was simply learning the words I frequently used, including “document”, “international”, “identity”, “immersing”, “contextual”—words not commonly found in daily speech. Indeed, I have limited encounters with academic Korean and struggled in my attempts to bring fluidity of grammar and style into my translation. Frankly, I still think it reads like a rather unremarkable textbook. I sometimes leaned on the way I remember my dad ending his sentences to help me bring a touch of warmth to my writing. I’m not exactly sure if it can be felt by anyone else, but I can definitely see it there.
이 번역 작업을 통해서 처음으로 한국 경제, 정치 용어를 사용해본 것은 물론이고, 또 평소에 유일하게 대화용으로 사용하던 한국어를 논픽션 작품을 번역하는 데 사용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이 작업에서 나에게 가장 큰 도전은 “문서”, “국제”, “정체성”, “이해성”, “상식성” 등 이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나 일상 대화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단어들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학문적인 한국어를 접해본 경험이 많지 않았고, 번역 속에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문법과 문체를 사용하려고 고군분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나의 번역이 조금은 딱딱한 교과서 같이 읽힌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름대로 아빠가 말씀하시는 방식을 되짚어가며 문장 끝 부분을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으로 인해 내 글에서 어느정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글을 읽는 다른 누군가에게 그 따뜻한 감성이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느껴진다.